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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Adieu

내 방 이야기 #3


 


2009년, 6월
적성, 파주

Rokkor 40mm, RDP3

뒤늦은 퇴근이었어도, 슬리퍼에 츄리닝 차림으로 동네를 산보 나가는 일은 피곤과 상관없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리고 옆방에 살고 있는 동기였던 종호(당시 작전장교, 지금은 애 아빠가 됐고 계속해서 군 복무 중)와 가끔씩 김밥천국에서 만나 럭셔리하게 주문해서 밥을 먹는 것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가끔은 4층에 살던(난 2층) 통신부소대장이었던 이상석 중사(전역하던 해에 결혼) 와 군수담당관이었던 김재호 중사는 피자와 치킨이, 족발과 보쌈이 식는다며 나의 퇴근길을 채근하기도 했다.

가장 나이스했던 것은 책방이었다. TV가 없었기 때문에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고, 무료해진 방안에서 뒹굴거리는 일은 꽤나 곤욕스러웠다. 그 무료함을 깨준것이 책방이었다. 당당히 적성민으로 책방 회원으로 등록과 함께 다량의 만화책을 빌리기 시작했는데, 꽤 많이 빌렸던 것 같다. 훈련이나 업무로 밀린 연체료를 낼 때면 그 액수가 상당해서 놀랐던 기억과, 책방을 간다며 큰 쇼핑백을 빌렸던 기억이 난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즈음엔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더 볼 책이 없어서 신간을 기다리던 무료함도, 날마다 씨름해도 줄지 않던 업무의 스트레스도, 외출과 외박을 나온 꽐라들로 주말이면 왁자지껄했던 적성 시내도, 좋아했던 커피우유를 세봉씩 묶어서 싸게 팔았던 SM마트도. 그 모든 것들을 이젠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다가 왔다는 것을, 그렇게 기대했던 전역이었지만 또 반면에 가슴 한켠을 싸하게 했던 묘한 아쉬움이 차오르던 때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마지막 빨래가 됐을 법한 그 때, 냄새가 좋아 늘 과하게 부었던 섬유 유연제를 한가득 부어 세탁을 마쳤다. 탈수를 마친 약간은 눅눅한 전투복들을 방안에 널어놨을 때 방안 가득 채운 그 냄새가 참 좋았다. 언제였던가. 지금은 형이 쓰고 있는 쪽방에서 아버지가 주셨던 태광 오디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던 "Love Letter"의 OST의 음악이 방안을 가득 채웠던 그 소리들처럼 냄새가, 향기가 내 방에 가득했다.  

그리고 몇일 뒤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모든 짐을 빼버린 내 방은, 처음 봤던 그 때처럼 썰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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