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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Adieu

내 방 이야기 #2

 

 

01

 

         2009년, 6월
          파주, 적성
 
  Rokkor 40mm, RVP100

 

대단할 거 없는, 2-3평의 원룸으로 돼 있는 낡은 빌라였다. 가장 큰 문제는 애매하게 틀어진 창틀. 제대로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아서 외부의 온갖 먼지가 날아 들어왔다. 어쩌다 훈련을 마치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땐 뽀얀 먼지가 수북히 쌓일 정도 였다. 상황이 이런지라 이사를 했던 첫 날 본 방의 모습은 꼭 몇 년은 쓰지 않은 것처럼 흙먼지로 뒤덮혀 폐가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은 화장실에서 정점을 찍었다. 화장실의 타일들은 현대 미술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색들로 얼룩져 있었고, 변기 속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블랙홀 같았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방을 사용하던 전임자들과 전화 통화도 하면서 따졌고, 외부 관사 배정에서 힘깨나 썼다는 본부중대장 선배에게도 이건 사람 살 곳이 아니라며 조공으로 바쳤던 나의 게임기를 돌려받고 영내로 들어가겠다고 항의를 했다. 하지만 이미 외부 관사에 대한 보고는 끝난 상태에서, 일개 중위 나부랑이의 항의가 먹힐리가 없다. 앞으로 4달간은 죽으나 사나 "니 방" 이라는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거 몇 달이라도 사람처럼 살아보겠다고 부대에서 걸레 몇 장을, 집 앞 마트에선 외계처럼 보이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할 만큼 독해 보이는 욕실청소 세제를 구입했다. 그리고 주말 내내 방과 화장실을 두고 씨름했다. 청소를 하다가 너무 힘들 때면 "나는 왜 이러고 앉아 있는가?"를 떠올렸지만 땀방울 덕분에, 아무리 세제를 들이부어도 나아지지 않는 시커멓게 상해버린 변기 속을 제외하면,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됐다. 부대에서 가져온 남는 옷걸이와 책장, 수납 박스를 사다가 나름의 살림을 꾸리면서 구색이 갖춰졌고, 첫 날 봤던 충격의 장면은 거의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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