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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Family

2016, 01



2016년 1월

금곡동


x100T



100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인하는 사진처럼 달라졌다. 하지만 나와 와이프는 매일 전쟁을 치르며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사진을 꺼내보고서야 '아 맞다'라며 무릎을 친다. 


사진 속에는 두 명의 인하가 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인하와 100일 후의 인하다. 그동안의 일들은 새카맣게 잊었어도, 100일 전 그날의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는 예정일을 3일이나 넘겨서야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어느 순간 진행이 빨라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인하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시간은 꽤나 길어져 새벽을 넘고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잠깐 분만실 밖에 있는 쇼파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분만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이제 나오나 보다' 싶은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달려 갔는데, 분만실에 있는 모든 간호사와 의사들이 아내를 붙들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내는 진통과 호흡곤란으로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고, 아기의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기계에선 기분 나쁜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의사는 아내의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며숨을 바로 쉬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나에게 수술 동의서를 드리밀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아기의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산모와 아기, 둘 다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수술을 해 빨리 아기를 꺼내야 한단다. 제왕절개였다. 의사는 전신마취로 인하거나 수술 중 일어날 수 있는 위험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평소에도 결정장애가 있을 만큼 빠른 결정을 못 내리는 나에겐 너무나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동의서에 바로 사인을 했고 아내는 분만실로 이동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의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당부만 몇 번 했을 뿐이었다.


간호사는 아이는 금방 나올거라며 어디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기가 나올 때까지 시간은 10분, 아니 그보다 짧았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머리 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때문에 머릿 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수없이 그리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내 생에 가장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분만실 출입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나왔고, 나를 찾았다. 웃는 얼굴이었다. 아기는 건강하게 잘 나왔고, 산모는 수술 마무리 중이라고 했다. 아내와 인하 둘 다 무사했다. 그 순간 나를 짖누르고 있던 긴장과 압박이 풀리면서 나는 큰 소리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내 입에선 감사함이 터져나왔다. 잠시 후 아기 울음 소리가 조금씩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인하가 작은 인큐베이터에 실려서 나왔다. 얼굴은 ET를 닮아 있었지만 한눈에 내 아들이라는 걸 확인했다. 구레나룻은 물론이고 얼굴부터 등까지 털이 잔뜩 나 있었다. 간호사와 함께 안구부터 입안, 손가락, 발가락 등 인하의 몸 구석 구석을 살피며 이상유무를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그리고 생애 첫 사진을 찍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수술이 마무리 된 아내가 회복실로 옮겨졌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몸은 좀 괜찮냐는 나의 물음에 아내는 되려 아기는 무사히 나왔냐고, 이상 없냐고를 수없이 반복해서 물었다. 아내는 아기의 심장박동이 떨어진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혹시나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그렇게 정신 없는 중에도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방금 전에 찍은 인하를 보여주면서 괜찮다고 설명했지만 아내의 걱정과 불안은 한참 뒤, 입원실로 옮겨져 인하를 만나고 나서야 끝났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이 이야기는 온전한 나만의 기억이다. 인하의 출산을 지켜보며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또 그것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엄마들이 얼마나 숭고하던지.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의 시작은, 출산을 목도했을 때가 아닐까. 인하의 존재를 늘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100일 동안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아내와,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인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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