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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Trabzon, DAY 3


전날 시간대를 못맞춰서 가지 못했던 Sumela 수도원으로 가기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묶었던 숙소에서 멀지 않은 정류장에서 수도원으로 향하는 돌무쉬(차량)을 탈 수 있었다. Sumela 수도원은 절벽 위에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가서 보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AD 386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지어진 이 수도원은. 산에서 성모의 아이콘이 발견되면서 두 수도승에 의해 지어졌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전설은 전설이라지만, 실제 그 위치를 보면 지어진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이는 위치였다. 

@ 돌무쉬 티켓, 돌아오는 시간이 적혀있다




@ Sumela 수도원을 촬영하고 있던 방송 종사자



@ 저 절벽처럼 보이는 곳에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꼬불꼬불 한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간단히 돌아오는 시간에 대한 안내를 받고 안으로 걸어갔다.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거리가 좀 되는데, 숲속 길을 따라 걷기 때문에 기분이 꽤 괜찮다. 험한편은 아니지만, 숲속 길인지라 힐이나 가죽 부츠와 같은 불편한 신발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 입구에는 화장실과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 돼 있다



@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것이 입구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절벽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좁은 문을 통과하면 동화 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영화 세트장과도 같은 수도원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바깥으로 보였던 건물은 우측 하단의 빨간 지붕의 건물이다. 그 건물이 안의 공간을 받치고 있는 듯한 구성이라, 작은 마을이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각 건물의 창은 그리 크지 않았다. 덕분에 어디를 들어가도 약간은 어둑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작은 창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내부의 그림을 강조하려고 했던 의도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Sumela 수도원은 이콘(성화)로 시작된 전설을 갖고 있는만큼, 성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테라코타로, 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약간은 어두운 실내였던지라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혹 이곳을 방문해서 사진으로 멋지게 담아 갈  계획을 하고 있다면, 모노포드나 삼각대 같은 것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 천장, 창문 어디 할 것 없이 빼곡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1900년 초까지 이곳은 수도원으로 사용이 되고 있었지만,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고 그리스인 이주 정책에 따라 수도원을 비우게 됐다고 한다. 나라의 문화 관광적 차원의 주요 자산으로, 입구에 매표소를 두고 관리까지 하지만 이제는 관광객의 발걸음만 찾는 수도원이 됐다. 수도원의 위치도 그렇고, 빼곡이 그려놓은 성화들도 그렇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뒤로 뭔가가 썰렁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엔 몰랐던 기분을 최근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나름 찾게 됐다. 허삼둘 가옥을 보던 유홍준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집이란 사람이 살고 있을 때만 살아있다. 사람이 떠나면 집은 곧 죽는다" 이 말처럼, 서로 살갑게 부대끼던 온기가 빠져있는, 죽어있는 건물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다가, 결국 3일간 물고기 뱃속들어갔다 나와서야 그 명령을 이행했던 '요나 이야기'



@ 거의 모든 그림들이 성경에 대한 내용이었다. 옆쪽에 그리스어로 적혀있는 것을 읽고 알 수 있다면, 그림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 마리아와 아기 예수로 추정된다



@ 얼굴이 훼손된 그림



안타깝게도 많은 그림들이 훼손됐다. 색상을 보건데, 아마 원형이 잘 보전됐다면 정말 멋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절로 든다. 손이 닿는 대부분의 그림에는 이런식으로 얼굴이나 눈들이 집중적으로 파헤쳐져 있었다. 보기에도 민망한 상태들의 그림들도 꽤나 많았다. 관리의 소홀함이나 국민성에 대한 문제들도 있었겠지만, 카톨릭과 이슬람과의 묘한 종교적 신경전과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 둥그런 아치형 선반에도 꼼꼼하게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Sumela 수도원의 하이라이트는 여기였다. 성경의 주요 사건들이 순서대로 그림으로 그려졌던 예배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외벽이었다. 예전에는 글자의 보급이 일반적이지 않고,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권력'처럼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책을 만들어서 보급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쉽게 성경과 말씀에 대해서 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을 이용한 것이다. 아마도 성경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들이 '읽혀' 질 것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게 된다면 한 편의 그림 성경책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또 한가지 생각은, 성경의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아마도 교육적 목적에서 그려졌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이 앞에서 나이 많고 지식이 풍부한 노 수도승이 그림 하나 하나를 설명하며, 젊은 수도승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진 않았을까 라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 왼쪽 상단은 '천지창조'로 추정되며, 이후 구약에서 신약까지의 주요 사건들이 자세히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다



@ 병거를 보며 구약의 내용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던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얼마 못가서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 누군가에겐 로마의 폭정에서 민족을 구원시켜 줄 '구원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로마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변명도 하지 않는 예수님을 향한 분노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게 했다



@ 예수님의 양 옆에는 두 도둑이 함께 못박혔다. 한 명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또 한 명은 자신과 예수님을 저주했다



@ 날이 저물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한 부자가 왔습니다. 그 사람도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는 내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셉은 시신을 가져다가 모시천으로 쌌습니다. (마태복음 27:57-59절, 우리말성경)


@ 마지막 때로 추정


관람을 마치고, 시간에 맞춰서 모임 장소로 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뭔가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 됐는데,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수도원 아래쪽, 꼬불거리는 산길이 시작되는 입구에 있었던 식당쪽에서 만나자는 얘기 같았다. 매표소에 있는 여직원 한테 가는길을 손짓발짓 물었더니 수도원 옆의 샛길을 알려주며 따라 가라는 것 같았다. 앞에서 인도를 하길래, "OK"를 말했지만 그 직원은 가지 않고 한참을 나를 데리고 내려갔다. 꾸불거리는 산비탈을 15분정도 내려가니 큰 길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여직원은 내가 못알아 들을까봐 걱정이 됐는지 아래까지 함께 내려왔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Çok teşekkür ederim' (Thank You Very Much)이라며 인사를 건냈다. 

밑으로 내려와서 다행히 돌무쉬 일행을 만났고 식당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가격은 기억이 안나지만, 배낭여행자의 근성은 먹는 사치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식사보다 요기만 채우고, 시내에 가서 먹는 걸로 결정했다. 차를 타고 다시 Trabzon의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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