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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2011, Okinawa #2-1

Japan, Okinawa #2-1


2011. 09. 12 - 09. 15



에어컨을 넉넉하게 틀고 자서 그랬는지, 둘째 날 아침은 뽀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날처럼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에 역시 서둘러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항구 근처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시간 400엔, 1일 1500엔이라는 금액이었지만 반나절에 1000엔 정도에 빌렸던 것 같다. 


물론 자전거는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었다. 12단이니 18단이니 하는 기어 따위 없고, 대신 장바구니가 예쁘게 달려 있는 지극히 평범한 자전거였다. 그래도 가격을 생각한다면 배낭여행객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구두쇠심이 발동 했는지, 이왕 반값으로 시작한 여행 최저가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에 흐뭇하기까지 했다. 


미친듯이 페달질을 한다면 배가 떠나는 시간에 맞춰 일주도 노려볼만 했다. 하지만 섬의 곳곳을 둘러보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반바퀴 정도만 돌고 닷츄를 들러 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참고로 이에섬의 주요 스팟들은 섬의 오른편에 집중돼 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요기거리를 사들고 길을 나섰다. 







전날에도 봤던 풍경이지만 쨍쨍한 햇빛 아래에서 닷츄를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에섬의 유일한 리조트인 'YYY 이에 리조트'. 객실이 전부 오션뷰 라고 한다. 이어지는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에 비치(Beach)'의 경관은 참 황홀하다. 가이드북에선 '오키나와 9대 해변' 중 하나로 꼽을 정도. 여유만 있다면 하루 정돈 이곳에서 머무르며 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겠다. 







이에 리조트를 조금만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이에 비치. 바로 옆에는 청소년여행촌이 있다. 해변가 주변으로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입장료를 받는다(100엔).











화창한 날씨 덕분에 공원은 반짝였다. 



















본격적인 페달질에 앞서 에너지를 보충했다. 우유 한 팩, 샌드위치 한 조각.










이에섬의 바다 색은 그동안 다녀봤던 그 어느 곳보다 특별했다. 수심 차이 때문일까. 에메랄드 파란색의 대비가 분명하다. 바닷물도 우유를 타놓은 듯이 약간 불투명하게 보여 파스텔 톤의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건너 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오키나와 본섬이다. 마찬가지로 건너편에서도 이에섬을 볼 수 있다. 







이에섬은 산호섬으로 해변에는 산호의 잔해(?)들이 잔뜩 있다. 새하얀 백사장은 아니지만 이 역시 매력 있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이국적인(여행자 입장에서) 분위기를 풍기는 사물이나 식물들을 만난다. 예전 터키 여행 때는 보라색 꽃을 가진 식물을 도심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꽃을 볼 때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이국적인 느낌을 받곤 했다. 근거 없는 '중동의 꽃'이란 느낌이랄까. 이에 비치 주변에서도 그런 느낌의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눈에도 열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나무들은 오키나와가 동남아 지역에 가깝다는 지리적 특징을 말해준다. 원시림의 날 것 느낌이 인상적이다. 







화창한 날씨. 오묘한 색의 바다. 열대의 정취. 덕분에 컨디션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전날의 피로는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이에 비치에 도착 했을 때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매표소가 닫혀 있었다. 그래서 나오는 길에 입장료를 지불했다.







전날 식당을 찾아 헤맸던 곳이 바로 이곳, 라메르 라는 식당이었다. 고독의 절정을 맛보게 했던 라메르는 영업 준비로 분주했다.







제주도처럼 이에섬도 바람이 많이 부는지 곳곳에서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다.






동네에서도 종종 보였던 히비스커스. 지도를 보니 히비스커스 공원이 눈에 띄였다. 마침 올라가는 길이기도 해서 가보기로 했다. 히비스커스 공원은 이에지마 컨트리클럽이 근처에 있다. 워낙 큰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중간에 샛길들이 많은 편이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이드북에 있던 지도는 그리 세밀하지 않았던지, 지도정치 따윈 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 GPS와 구글맵 등을 이용하면 편리할 것 같다.



공원은 펜스로 구분돼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산책로가 나오고 곳곳에 심겨진 히비스커스들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이동하면 온실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정원에 심긴 히비스커스와는 다른 특별한 히비스커스를 만날 수 있다.  따로 설명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전시관 같은 곳이었다.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의 히비스커스가 전시돼 있으니, 꽃을 좋아한다면 들러보긴 권한다.








흐르는 땀을 닦고, 화상을 입어 따끔거리는지도 모른 채로 이마를 연신 긁어대며 페달질을 했다. 여행의 흥분은 최고조에 다다르는 듯 했다. 그러나 한 순간 '대참사'가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송두리채 꺾여 나갔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앞선 사진에서도 나왔듯이 바구니에 카메라 가방을 넣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풍력발전기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무게 중심이 위태로웠던 자전거가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만 것이다. 슬로우 모션처럼 쓰러지는 자전거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사실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자전거가 높지 않았고, 또 카메라 가방의 쿠션이 제법 믿을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해 카메라의 상태를 보니, 꽤 심각했다.


일단 카메라는 문제가 없었지만 렌즈의 축이 틀어져 있었다. 마치 사람의 팔,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간 듯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급한 마음에 셔터버튼을 눌러봤지만 '웅, 웅' 거리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축이 틀어지니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화각 조절도 되지 않았다. 아주 약간만 움직일 뿐이다. 망연자실. 


물론 필름카메라를 가져가긴 했었다. 아니 굳이 메인 카메라를 따지자면 단연 필름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일정인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만큼은 필름카메라는 서브도 아닌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다. 애써 증감을 하더라도 1600을 넘는 감도 확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S5Pro가 고감도와 포커싱 능력에서 그리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필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츄라우미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였는데, 한순간에 날려먹게 생겼다.


이제 이에섬 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렌즈를 살려야 했다. 모든 일정을 미룬 채로 무더위에 그늘진 곳을 찾아 렌즈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일단 틀어진 축을 손으로 바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힘을 주자 이내 '찌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렌즈가 바로 잡히는 소리 같진 않았다. 더는 만질 수 없어서 줌링으로 타겟을 바꾸었다. 다시 움직이지 않는 구간을 억지로 늘려보려 했지만, 이 역시 불길한 소리만 내면서 성과가 없었다. 이제는 오로지 MF촬영만 남았다. 모드를 바꾼 뒤 테스트를 해보니 찍히긴 했지만 MF용 스크린이 아니어서 초점 맞추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포커스링도 망가졌는지 걸리는 구간 없이 헛돌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만족해보려 했지만 찍는 일도, 결과물도 시원찮았다.


한참을 낑낑 거렸지만 해결된 것은 없었다. 탄식이 쏟아졌다. 반값 여행을 탐했던 죄가 이리 크던가. 나고 시내에서 렌즈를 새로 살까도 생각해 봤지만 머리만 복잡해졌다. 그렇게 한숨을 픽픽 내쉬다가 배는 타고 가야 했기에 다시 자리를 일어섰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AF모드로 바꾼 뒤 카메라를 만졌다. 그 순간 시원찮은 소리를 내면서 포커싱을 다시 시작했다. 호흡이 멈췄던 렌즈가 아주 미약하게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을 테스트 했는데, 위 사진이 바로 그 회생의 순간 중 한 장이다.


물론 정상은 아니었다. 보시다시피 최대 개방에서는 절반 정도가 초점이 맞지 않았고 줌링도 30-50mm 정도 구간만 움직였다. 초점을 잡는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초점 자체를 제대로 못 잡아 반셔터를 몇 번이나 눌러야 했고 헛도는 포커스링 때문에 '지잉, 지잉' 거리며 초점을 잡을 때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그래도 죽음의 기로에서 생명력을 발산하는 렌즈를 마다할 수 없었다. 이 기특한 녀석.







경황이 없어 그 당시엔 잘 몰랐지만 렌즈를 고치려고 그늘을 찾았던 곳은 이에섬의 유명 스팟 중 하나였던 곳이었다. 제주도의 주상절리처럼 단애절벽으로 유명했다. 이에 비치의 풍경과는 모습이다. 푸른 바닷빛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와 거친 절벽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니 강인한 기개가 느껴지는 듯 했다. 죽다 살아난 렌즈가 더할 것 없이 감사했지만 이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없어서 꽤 아쉬웠다. 절벽 아래 있는 해안가에는 용출수가 솟아난다고 한다. 이에섬의 주요 수원지이기도 하다.



 



















생뚱 맞은 위치에 또 다시 등장한 자판기. 뒤로 보이는 것은 소 우리다. 샛길 중간 중간에 이런 식으로 자판기들이 설치 돼 있다. 자판기의 나라다운 풍경이 아닐까. 이용할 사람이 아주 없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집에서 물통 싸들고 다니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약간 뿌예지고, 좁아진 닷츄 사진. 슬프게도 최대 화각이었다.






자판기군이 다시 등장했다.








늘상 누르던 셔터였지만 대참사 이후 촬영된 사진에선 뭔가 애뜻한 마음이 생긴다.  길가에 있던 식물이다. 안에는 이상한 열매가 있었다. 생김새를 봤을 때는 열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양치식물처럼 생겼는데, 알을 품은 듯한 신기한 자태에 호기심이 생겨 검색을 해봤다. 소철(Sago Palm)이라는 이 식물은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지방이 원신지인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소철에는 독성이 있어서 적절한 조리과정을 거쳐야 식용이 가능한데,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조리법을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조리법이 발견된 이후에는 기근을 극복하기 위한 비상식량으로 소철을 심었고, 최근에는 열대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심고 있다.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느니, 닷츄에 올라가 이에섬 전경을 찍겠느니 했던 어제의 계획은 모조리 수정 됐다. 아니 모두 날려 버렸다.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혹여 배가 출발하는 시간에 늦을까봐 페달링에만 집중했다. 오전에는 괜찮아 보였던 자전거의 무단 기어가 돌아오는 내내 그렇게 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숙소의 짐을 챙기고 나와 항구로 이동해 접수를 마쳤다. 서두른 덕분인지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조금 남아 늦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항구에는 소바를 팔고 있었다. 오키나와 도착 이틀만에 먹는 첫 소바였다. 워낙 지쳐있던터라 음미할 여유는 없어서 맛에 대한 코멘트는 어렵지만, 나쁘진 않았다.









이에섬 모습이다. 가운데 솟아오른 닷츄가 인상적이다. 






오키나와에서는 '해인'이라는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부를 뜻하는데, 오키나와 방언으로는 '우민츄'라고 부른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 사람들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보다 정확한 단어는 '우치난쥬(ウチナンチュー)'다. 우치난쥬는 오키나와의 사람, 즉 1800년대 말까지 독립국가로 존재했던 '류큐민족(왕국)'을 의미한다. 반대로 일본 본토 사람들은 '야마톤츄(ヤマトゥンチュ)'로 불렀다(비슷한 의미로 내지 사람들을 의미하는 나이츄(ナイチャー)도 있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풍습 등을 갖고 500여 년 동안 발전해왔던 류큐왕국이었다. 그러나 1871년, 일본정부는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기치로 내세우며(메이지 유신) 일본으로 강제 편입시킨다. 합병 이후 일본 정부는 류큐민족을 대상으로 황민화 교육을 펼치는데, 그 행태가 우리네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유사하다. 박해와 차별, 금지와 강제를 통해 류큐의 흔적을 지우거나 왜곡시키면서 민족적 열등감을 조장한 것이다. 


이후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일본 본섬과 인접해 있어 폭격이 용이했고, 진출에 있어서도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선 본섬의 피해를 막기위한 마지막 방패막이었던 셈이다. 오키나와에 전투는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낸,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다. 무엇보다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오키나와 주민들이었다. 12만여 명의 많은 주민이 포화속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은 패망으로 치닫게 되고, 오키나와는 미군에 점령당해 27년간 미군정 치하에 놓이면서 아픔의 역사가 이어진다.


오키나와현이 탄생한 이후 우치난쥬들은 질곡의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들 속에는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반일감정의 응어리들이 한으로 남게 됐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스스로를 '오키나와인이면서 일본인' 내지는 '일본인이면서 오키나와인'이라고 말한다. 본인들이 우치난쥬라는 임을 정확히 구분 짓고 있다.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것이다.


여행 내내 어디에서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우민추를 두르고 있었다. 마치 '오키나와인'으로서 혼란스러워진 그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모두가 연대해 선언하는 외침 같았다.







착잡한 마음에 바다를 내려다 본다. 짙고 푸른 남색의 바다는 몇 번을 봐도 신비롭다.






직무를 유기했던 문제의 카메라 가방이다. 지난 2003년, 캐논의 첫 DSLR이자 내 인생의 첫 DSLR이었던 D30과 함께 구매해다(물론 모두 중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도 넘게 세계 곳곳을 누비며 훌륭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건만, 찰나의 순간에 어느 여행에서도 다시 없을 가장 치명적인 사고를 내고 말았다. 사실 중간에 Artisan 가방을 구매해 편애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츄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해양박공원으로 이동 중이다. 저 멀리 이에섬의 닷츄가 보인다.







해양박공원 입구.











멀리서 보이는 이에섬과 주변 바다 풍경. 심난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S5Pro, (고장난)Tamron 17-50


#2-2 히비스커스, #2-3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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